언니와 매일 걷는 동네 산책길에 단풍이 참하게 들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침저녁으로 차려드린 식사를 마치면,
언니는 늘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잘 먹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언니는 나와 함께 산책을 나선다.
걸음은 느림보다 더 느리지만, 그 느린 걸음 안에 언니의 생이 담겨 있다.
나도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언제나 언니보다는 반 발짝 앞서 걷는다.
이제 언니와 함께 걸을 수 있는 시간도 한 달 남짓.
그래서 나는 매일, 매 순간 언니와의 시간을 마음 깊이 새기며 보낸다.

언니는 미국 엘에이에서 살던 시절, 다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이름 뒤에 ‘소녀’를 붙였다고 한다.
지난주엔 그 중 한 분이 전주를 방문했다.
여든이 된 그분의 이름은 ‘송소녀’.
목사님이 이렇게 소개하셨다.

“미국에서 오신 걸그룹의 멤버 중 한 분, 송소녀님을 소개합니다.”

순간, 교우들의 웃음이 교회 안에 따뜻하게 퍼졌다.

언니의 별명 ‘윤소녀’는 내게 오래된 음악처럼 익숙하다.
나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 별명을 알고 있었다.
그 ‘소녀들’은 이름처럼 참으로 소녀답게 살았다.
골프를 치고, 수영을 즐기고, 때로는 작은 갬블링을 하며
젊음의 기운을 놓지 않던 진짜 친구들이었다.

언니는 종종 말한다.
“인생 말야, 85세가 정점인 것 같아. 그 다음은 뭐, 재미 있겠냐?”
언니는 올해 여든셋.
그 말대로라면 앞으로 남은 정점의 시간은 고작 두 해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난다 한들,
지금처럼 몸을 돌보고, 밥을 잘 챙기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안다. 언니의 걸음걸이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음을.

오늘 산책길에서도 우리는 돌아가신 엄마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아흔까지 당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하루하루를 마무리하셨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좋은 직장에서 일했던 언니보다
고생 많았던 어머니가 오히려 더 건강하셨다.

지난주 내가 두 번째 주사를 맞으러 서울에 올라갈 때,
언니는 자신의 비자 카드를 내 손에 꼭 쥐여주며 말했다.
“야, 신경 쓰지 말고 팍팍 써라.”
내가 비실거리는 것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 한마디에 언니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칠 남매 중 이제 단 둘이 남았네.”
우리는 자주 그렇게 말하며, 지나온 세월의 조각들을 맞춰본다.
그럴 때마다 언니의 작은 체구 안에서 커다란 마음이 느껴진다.

고마운 언니,
윤소녀.
나는 오늘도 그 이름을 마음에 품는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사랑한다, 나의 언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씨 : 맑음 / 10도 / 수영장 다녀오고 ‘찻집 온’에 다녀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