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예쁜 감잎을 보고 반해 몇 장을 주웠다. 말려서 집에 가져가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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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언니와 함께 골목길의 오뎅집에 들렀다. 오래전 먹던 추억의 맛이 생각나 한 번 다시 먹어보기로 한 것이다. 오뎅의 맛은 여전히 구수하고 맛 있었다. 그런데 오뎅 세 꼬치를 먹는 동안, 우리는 묻지도 않았는데 오뎅 아줌마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다 듣게 되었다. 불과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녀는 두 번의 결혼과 현재의 삶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참, 여자들은 왜 이렇게 스스럼없이 자기 이야기를 척척 풀어놓을까? 그건 어쩌면 여자의 본능이자, 살아가는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아줌마의 말에는 경상도 억양이 섞여 있었다. 고향을 묻자 역시 포항 출신이라 했다. 어떻게 전라도까지 오게 됐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말여, 첫 남편이 바람을 피웠지라. 내가 증거를 들이밀었더니 결국 헤어졌지잉. 먹고살라믄 어쩌겄어, 전라도까지 와서 장사 시작했지잉.”
지금은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경상도 말씨와 묘하게 섞여 들렸다. 내가 “그럼 지금은 오뎅 장사로 생계를 꾸리시나요?” 묻자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녀, 두 번째 결혼도 했제잉. 근디 그 사람은 정자 생산이 안 돼서 애는 못 가졌당께. 그런데 그 사람이 또 공사판에서 일하다가 그만 가부렀지 뭐여.”
“세상을 떠나셨단 말씀이에요?” “그려. 근디 보상금이 좀 나와서 옆에 식당도 같이 하고 있응께, 이 오뎅 장사는 그냥 봉사하는 셈이여.”
아줌마의 말대로라면, 오뎅 여섯 꼬치에 4천 원, 붕어빵 세 개에 2천 원이라니 이윤은 거의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짙게 문신한 눈썹 아래에는 세상 풍파를 다 이겨낸 여자의 강단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여자들이 오래 사는 이유는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수다로 하루의 무게를 덜고, 이야기로 상처를 치유하며, 낯선 손님에게도 마음을 열어 삶의 짐을 나눈다. 그 몇 마디 대화 속에서 서로 위로받고, 웃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여성들이여 사는것이 어렵고 힘들어서 지금처럼 계속 전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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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아리랑을 부르는 유클레리 합창단원들
날씨 : 18도 / 낮에는 매우 따뜻해서 잠바없이 다녔다. / 언니와 요양보호사와함께 단풍구경도하고 도서관도 들리고 백화점에서 eye shoping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