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은 후 박교수의 강의가 있었다. 학생은 나와 하숙 선생님과 단 둘 뿐이었다. 귀한 강의였다. 문학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함께 남았다.
아래는 박양근 교수의 강의 가운데 일부다.
강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글은 온 힘으로 밀어 올리는 것이다. 땅속에 묻힌 싹이 흙덩이를 밀어내고, 달팽이가 제 몸을 풀잎 끝으로 끌어올리며, 새가 몸 전체로 창공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힘—그것은 춘기(春氣) 그 자체다. 글 또한 혼신을 다해 밀어 올리고, 끌어당기고, 끄집어낼 때 비로소 생명의 꽃을 피운다. 작가는 춘곤증이 아니라 춘근력으로 글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박 교수는 이어 시지프의 신화를 새롭게 읽어낸다.
기존의 시지프는 바위를 밀어 올려도 결국 다시 굴러떨어지는 존재였다. 목적 없는 반복, 무의미의 형벌을 짊어진 인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박양근 교수가 그려내는 시지프는 다르다. 그는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밀어 올린다. 이 반복은 패배가 아니라 갱신이며, 봄처럼 다시 시작하는 시간의 상징이다. 여기서 시지프는 더 이상 ‘헛수고를 하는 자’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존재’가 된다.
박 교수는 이 ‘봄의 시지프’를 통해 삶의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인간이 아니라, 그것을 끌어안고 다시 시작하는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 그 연장선에서 알베르 까뮈 역시 새롭게 읽힌다. 까뮈는 흔히 세계의 무의미와 인간의 반항을 말한 부조리의 철학자로 이해되지만, 박양근 교수의 해석 속에서 그는 절망을 말한 작가가 아니라, 절망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작가다. 부조리를 제거할 수 없음을 인정하되, 그 안에서 살아가는 태도를 묻는다. 시지프의 행복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몫의 삶을 기꺼이 떠안는 태도에 있다.
박 교수는 또 이런 말로 강의를 맺는다.
“삼위일체는 심오한 종교적 개념이지만, 사전적 주해를 빌리면 ‘세 가지의 것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연관되고 통합되는 일’을 뜻합니다. 숫자 3은 균형과 집중, 그리고 폭발력을 상징합니다. 작가의 문력(文力)이 눈과 손과 발의 삼위일체 공식을 따른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교수님의 귀한 강의를 들으니 내 글쓰기는 한결 더 활기를 띄지 않을까 싶다.
박양근 교수는 부산 국립부경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한 뒤에도 문학을 삶의 문제로 성찰하는 글쓰기와 사유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전문 분야는 영어영문학, 영어학, 문학평론, 수필 창작이며 현재는 동서인문학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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