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 살고 있는 ‘마틸다’ 할매로부터 손으로 쓴 카드 한 장이 도착했다.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 아일랜드에서 몬트리올까지의 거리는 약 3,800km다. 말하자면 캐나다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다. 시간 차이만 해도 세 시간이다.

마틸다는 몇 해 전 여름, 남편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할매다.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의 초등학교 친구와 관련된 상속 문제를 정리하러 왔었다. 이곳 서양 할매들이 대체로 친절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마틸다는 유난히 살갑고 다정했다. 말투에도, 눈빛에도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요즘엔 좀처럼 보기 힘든 손글씨 카드였다. 봉투를 뜯는 순간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도 그 감동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곧바로 답장을 썼다. 손이 느리게 움직였지만 마음은 바빴다.

카톡이 없던 시절, 나는 12월 초만 되면 카드를 쓰기 시작했었다. 해마다 백 통이 넘는 카드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한국처럼 먼 곳에는 3 주쯤 미리 붙이고, 그다음 미국, 그리고 캐나다 순서로 차례로 보내곤 했다. 우체국 창구 앞에서 주소를 다시 확인하며 설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을 따라 카드 쓰기는 어느 해부터인가 슬그머니 내 삶에서 빠져나갔다.

편지를 기다리던 기쁨도 함께 사라졌다. 우체통을 열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숨을 고르고, 편지를 발견하면 가슴을 조이며 봉투를 찢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라면 말해 무엇하랴. 글씨 하나, 종이의 냄새 하나에도 마음이 먼저 반응하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연애편지를 참 많이도 주고받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밤잠을 설친 사연도 몇은 된다. 그때는 그 사랑만 가질 수 있다면 당장 함께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사랑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지금은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니 살아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사랑은 분명 지나가는 안개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손글씨 카드 한 장처럼, 어느 날 문득 삶 한가운데로 다시 찾아와 가슴을 데우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믿는다.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양을 바꾸어 남는 것이라고.

손편지 한 장을 받아 들고, 문득 지나간 사랑의 시간들을 천천히 더듬어 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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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비 / 6도 / 수영장 다녀오다. /

요즈음 우리 집은 식당에서 음식을 사다 먹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내가 한국을 다녀온 뒤, 우리집의 식생활 패턴을 조금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은 하숙 선생님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선생님은 두 달 반 동안 혼자서 매 끼니를 만들어 드셨다. 그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혼자 밥을 챙겨 먹는 일이 생각보다 얼마나 고되고 지치는 일인지 몸으로 알게 되셨다. 그래서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만큼은 식당 음식을 사 먹자는 새로운 원칙을 세웠다. 밥을 짓는 수고를 조금 덜고, 삶의 숨통도 함께 트이게 하자는 취지였다.

어제는 중국집에서 치킨 차우판을 사 왔다. 나는 기대를 조금은 했는데, 애구구… 내가 마음속으로 그리던 그 맛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실망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미 규칙을 정했고, 나는 그 룰을 지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맛을 따지기 시작하면 밖에 나가 음식을 사 먹을 수가 없다. 특히 이곳 빅토리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맛이 있든 없든, 오늘은 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 집의 외식은 미식이 아니라 휴식에 더 가까운 선택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애궁 소리가 나와도, 그 또한 우리 일상의 한 장면이다. 나는 ‘애궁’과 ‘야호’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터져 나온다. 히 히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