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상 : 완전 한식으로~ 콩나물 무침, 근대무침, 고소한 닭살넣은 미역국, 고등어구이, 김구이, 김치 그리고 영양돌솥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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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수영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함께가던 하숙 선생님께 내가 말했다.
“선생님, 이제 나이도 칠십 중반을 넘었으니 언제 가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자마자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펄펄 여사 엘리샤 장군님이.”
“아이고, 겉으로는 말을 안 하고 살지만 사실 제 몸이 요즘 얼마나 무거운지 아세요.”
며칠 전에도 아는 분께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이 웃으며 말했다.
“엘리샤 씨는 몸은 무거워도 정신은 가볍잖아요.”
그 말에 나도 함께 웃었다.
사고 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새처럼 가벼웠다.
포르르 일어나 나비처럼 랄랄룰루 하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한 걸음도, 또 한 걸음도 조심하며 산다.
사실 정신적으로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하루를 잘 살아보려고 애쓰다 보니 크게 우울해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간밤에 힘든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이어서 하숙 선생님께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예전에 미국 LA에 살 때 나태주 시인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함께 시 공부도 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답게 참 소박한 분이다. 작은 체구에 꾸밈없는 모습,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은퇴하셨다.
그는 2007년 3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1주일밖에 못 살 수도 있다”고 말할 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가족들은 묘지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105일 동안 물도 마시지 못한 채 링거에 의지해 버텨냈고, 결국 병을 이겨냈다. 지금도 시집을 내며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때 병원으로 81세의 아버지가 시골서부터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병원으로 걸어들어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너는 어려서부터 몸은 약했지만 독한 아이였다.
그 독한 마음으로 병을 이기고 나오너라.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좋은 곳이란다.”
아버지의 그 말씀이 약이되어 그는 다시 살아났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만 짓던 할아버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오늘 다시 그 시집을 꺼내 읽었다.
그리고 힘을 얻어 또 그림을 그렸다.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힘을 내 본다.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내어 징글징글하게 좋은 세상을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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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매우 춥다. 밴쿠버에는 눈이 살짝 내렸다고 한다. / 7도 / 수영장 다녀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