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립들이 피어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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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의 여정, 은혜로 채워진 시간
오늘은 내가 캐나다 땅에 첫 발을 디딘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다.
1976년 3월 23일, 이 날은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운명의 날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고국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나야 했다.
나라 형편이 어려워 가진 것조차 마음대로 가져올 수 없었고, 그저 당장 입을 옷가지 몇 벌만 챙겨 이민길에 올랐다.
공항은 눈물의 바다였다.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길을 떠나는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나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날의 눈물과 떨림은 지금도 내 마음 깊은 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보잉 747에 몸을 싣고 떠난 그 여정 속에서, 승무원이 정성스럽게 내어주던 기내식은 내 마음에 놀라울 만큼 풍성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사기 그릇과 반짝이던 포크와 나이프, 정갈한 냅킨까지—지금의 비즈니스석에 견줄 만큼 품격 있는 대접이었다.
낯선 땅에 도착한 후,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집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제도 앞에서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여러 곳을 전전하며 아파트를 찾아 헤매던 끝에, 다행히 아이들을 환영해 주는 곳을 만나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추운 나라였던 탓인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실내 수영장이 있었고, 부엌에는 식기세척기까지 갖춰져 있어 또 한 번 놀라움을 느꼈다.
아들은 두 달 동안 유치원을 다니다가 곧바로 1학년에 들어갔고,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혼자 문을 열고 들어와 집을 지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한 일이지만, 그때의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바빴다.
어린아이를 혼자 두면 안 된다는 사실조차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설령 알았더라도 그 시절 우리에게 다른 선택이 있었을까.
그렇게 흘러온 50년의 세월은 한 편의 꿈처럼 느껴진다.
이제 나는 인생이라는 긴 기차의 마지막 칸에 앉아, 종점을 향해 조용히 달려가고 있다.
남은 길 위에서 그저 몸이 크게 아프지 않기를, 평안히 마무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돌이켜보면 슬픔의 날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행복의 날들이 내 삶을 채워 주었다.
이 모든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궁핍 속에서 막막할 때에도 길을 열어 주셨고, 생사의 경계에 서 있었던 순간에도 조용히 지켜 주셨으며, 눈물로 밤을 지새울 때마다 찬송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주셨다. 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은혜였고, 모든 시간이 사랑이었다.
앞으로의 날들도 나는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사랑하며, 웃으며, 그리고 감사하며.

정원 손질을위해 교우님 부부가 와서 많이 도와주셨다. 저녁은 내가 만든 핏자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