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밭에서
쑥밭에 내려가 보았다.
비탈진 길이라 발을 조심조심 디디며 내려가야 했다.
올라올 때는 막대기 하나를 주워 짚고 겨우 올라왔다.
세월이 몸에 먼저 닿는다는 것을 이런 순간마다 실감한다.
십여 년 전, 밴쿠버의 한 친구가 건네주었던 몇 뿌리의 쑥이
이제는 해마다 지천으로 올라온다.
작년에는 그 쑥을 말려 차로 끓여 마셨는데,
아직도 집 안에는 남아 있는 쑥이 적지 않다.
쑥이라는 것은 참으로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다른 작물과 함께 두면, 어느새 제 기세로 자리를 넓혀
주변의 것들을 밀어내고 홀로 번져간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생의 힘을 지녔다.
봄이 오면 늘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네 살 무렵, 언니의 손을 따라 언덕에 올랐던 날이다.
쑥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나는
언니가 가리키는 대로 작은 풀을 하나씩 뜯어 담았다.
언덕 위의 쑥은 많지 않았고,
작은 바구니에 몇 가닥 담은 것이 전부였지만
그날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또렷이 남아 있다.
지금 우리 집 쑥밭을 바라보면,
그때의 작고 소박했던 바구니가 먼저 떠오른다.
봄이면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들로 나가 쑥을 캐어
쑥국을 끓이고, 떡을 만들고, 전을 부쳤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배고픔을 견디게 하던 생명의 먹거리였다.
쑥은 나물이면서 동시에 약이기도 하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피를 맑게 하며,
상처를 어루만져 낫게 하는 풀.
지금은 좋은 연고들이 넘쳐나지만,
그 시절에는 이런 풀 한 줌이
사람의 몸을 살리는 손길이 되었다.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쑥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삶이 겹쳐 보인다.
일흔일곱 해를 살아오는 동안
좌절과 슬픔으로 주저앉았던 시간들,
그 시간들은 어쩌면 겨울을 견디는 쑥처럼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때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나는 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살아낸다는 것은,
다시 올라오는 힘을 잃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쑥 따갈사람들 연락바란다. 지금 쑥이 아주 여려서 최고의 맛이다.

날씨 : 맑음 / 11도 / 쑥 구경한 날 / 그림 그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