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방문자가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젊은 여성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늘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 깊고 또렷한 검은 눈동자, 그리고 빛을 머금은 듯 반들거리는 피부.
가볍게 입은 반바지 차림조차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거기에 더해, 그녀가 쓰고 온 빨간 원색의 모자는 마치 의도된 마지막 붓질처럼 완벽하게 어울렸다.

“어머나, 너무 멋져요.”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It’s spring. 이제 봄이잖아요.”

그 말은 단순한 계절의 인사가 아니라,
자신의 색을 기쁘게 드러내는 한 사람의 선언처럼 들렸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검정색’

나는 그림을 그릴 때면 언제나 먼저 검정을 칠한다.
캔버스에도, 작은 도자기에도,
가장 먼저 올리는 색은 늘 검정이다.
그 위에 다른 색을 입히기 위해,
보이지 않는 바탕을 먼저 만드는 일.

그동안 나는 그 과정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렇네…’

입속에서 조용히 흘러나온 말이었다.
검정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다른 모든 색을 살려주는 깊이였다는 것을
비로소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검정색을 귀하게 여기고 있을까.

솔직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늘 화려한 색에 먼저 눈이 간다.
옷을 고를 때도, 물건을 살 때도
눈길은 밝고 튀는 색으로 향한다.

검정은 너무 흔하다는 이유로,
혹은 너무 조용하다는 이유로
쉽게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가장 깊은 색이기에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색이 바로 검정이다.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혹시 나는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고,
자랑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검정색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빛나는 이들만 바라보고,
겉으로 드러난 색깔에만 감탄하며,
보이지 않는 깊이를 지닌 사람들을
무심히 지나쳐 온 것은 아니었을까.


검정은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깊이에서
모든 색을 살려낸다.

사람도 그러하지 않은가.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말없이 견디며,
누군가를 살리고, 세우고, 빛나게 하는 사람들.

어쩌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더 귀하게 쓰시지 않을까.


오늘 하루,
한 사람을 통해 나는 색 하나를 다시 배웠다.

아니,
삶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보는 눈을 배웠다.

매일이 공부요, 자성이며, 다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날씨 : 맑음 / 약간 쌀쌀했지만 해가나서 너무 좋았다. / 11도 / 수영장 다녀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