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의 공평, 양심 공정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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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세 아이가 높은 담장 앞에 서 있었다.
담 너머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장면을 보고 싶었지만, 문제는 키였다.
키가 큰 아이는 까치발을 들지 않아도 담 너머가 보였다.
중간 키의 아이는 애를 쓰면 겨우 보였다.
그러나 가장 작은 아이는 아무리 발돋움을 해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같은 자리에 서 있었지만, 세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전혀 달랐다.
그때 한 어른이 다가왔다. 아이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그는, 세 개의 의자를 가져와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공평하게 하나씩 주는 거야.”
아이들은 의자 위에 올라섰다.
키 큰 아이는 더 넓고 시원하게 담 너머를 바라보게 되었고, 중간 아이도 이제는 불편함 없이 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의자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었지만, 결과는 여전히 불공평했다.
어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서 의자를 다시 거두어 들였다.
이번에는 다르게 나누어 주었다.
키 큰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이미 잘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 아이에게는 의자 하나를 주었다.
그리고 가장 작은 아이에게는 의자 두 개를 겹쳐서 주었다.
아이들은 다시 올라섰다.
그 순간, 세 아이 모두가 담 너머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고, 모두가 같은 장면을 함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는 것이 과연 옳은가?”
겉으로 보기에는 공평해 보인다.
누구에게도 차별하지 않았고, 똑같이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마다 출발선이 다르고, 조건이 다르고, 필요한 것이 다르다.
그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똑같음’은 오히려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어 낸다.
반대로, 공정함은 다르다.
공정함은 사람들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누군가에게는 덜 주고, 누군가에게는 더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결국 공정함이란
“모두가 같은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왜 저 사람은 더 받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특혜가 아니라 필요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미 충분히 보고 있고,
누군가는 겨우 보고 있으며,
누군가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공평’이라는 단어보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세 아이가 함께 웃으며 담 너머를 바라보던 그 장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그런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누군가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함께 설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조금 더 고민해야 할,
그리고 조금씩 실천해 나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저녁 : 샐몬구이. 야채밥에 야채 수프다.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며…
날씨 : 18도 / 교회 다녀오다. / 어제 저녁 걱정했던것과는 달리 모든것이 잘 되었다. 친교실에는 도우미들로 넘쳐나서 나는 정작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도와주신 교우님들 모두고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