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외장하드 사고 이후, 그동안 저장만 해 두었던 수많은 파일을 다시 열어 보며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폴더를 만들고, 지우고, 같은 주제끼리 묶다 보니 사고 나기 전의 사진들과 그보다 훨씬 오래된 추억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속의 나는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어디든 발길 닿는 곳이면 신나게 다녔다. 특별히 코비드 전까지는 거의 해마다 유럽전시회도 International Artist’ 자격으로 많이 참여하며 그림 그리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몸도 마음도 참 팔팔했다. 그러나 7년 전 사고 이후, 예전처럼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사진 속 활기찬 나를 바라보니 괜스레 미소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가만히 보니 나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함께 웃고 뛰어다니던 사람들도 세월 앞에서는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싱싱하게 피어나는 존재들은 손자, 손녀들뿐이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도 나는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일도 분명 오늘보다 더 행복한 날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에게는 절망보다 감사할 이유가 훨씬 많다.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두 팔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잃어버린 것을 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내게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손자가 강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연필화에 도전하고 있다. 인물을 제대로 그려본 경험이 거의 없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몇 번이나 고치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손자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닮게 그리는 일은 참 어렵다.

12월 17일은 손자의 생일이다. 그날 “짜잔!” 하고 직접 그린 초상화를 선물해 주고 싶은 작은 꿈이 있다. 과연 그때까지 마음에 드는 그림이 완성될지 모르겠지만, 잘 그리고 싶은 마음만은 누구보다 크다. 어쩌면 그 그림은 손자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날씨 : 맑음 / 19도 / 수영장 다녀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