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텃 밭에 우뚝 솟아오른 코스모스 하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감자를 캤다.

봄에 싹이 난 감자가 아까워 밭 이곳저곳에 묻어 두었는데, 어느새 잎이 누렇게 바래기 시작했다. 잎이 누렇게 변하면 감자를 캘 때가 되었다는 신호란다.

오전에 호미를 들고 감자 줄기 옆을 살짝 긁으니 흙 속에 숨어 있던 감자들이 우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순간이 참 좋다. 몇 달 동안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며 기다린 시간들이 비로소 수확이라는 선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농사는 기다림의 예술이고, 수확은 그 기다림에 대한 가장 따뜻한 보상이다.

그런데 오늘은 감자를 캐다가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마음 하나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감자를 모두 떼어내고 남은 모체를 보는 순간, 그것이 꼭 우리 엄마 같았다.

감자의 어미는 이미 생명을 다해 껍질은 쭈글쭈글해지고, 색도 바래고, 곳곳이 썩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몸 하나를 희생하여 주위에는 탐스럽고 싱싱한 감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자기는 사라지면서도 자식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것이다.

한낮에는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다. 밤이 되자 문득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 손전등을 들고 다시 밭으로 나갔다. 불빛 가까이 가져와 사진을 찍어 보니, 그 모습은 놀라울 만큼 인간의 늙음과 닮아 있다.

윤기를 잃은 피부, 깊어진 주름, 생명을 모두 내어준 뒤 초라하게 남은 몸….

마치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의 뒷모습 같았다.

내일이면 탐스럽게 자란 감자들은 식탁에 올라 가족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감자를 키워 낸 어미 감자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문득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평생 감자를 먹으면서도 그 뒤에 숨어 있는 희생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 썩어버린 감자 둥치를 바라보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핑 돌았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도 그렇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젊음을 내어주고, 시간과 건강을 내어주고, 꿈까지도 기꺼이 내려놓는다. 자식들이 반듯하게 자라도록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며 정작 자신은 늙어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면 어머니의 얼굴에는 검버섯이 늘어 있고, 윤기 나던 머리카락은 희어져 있으며, 손은 거칠어져 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모두 자식에게 건네준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 마음을 다 알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생명은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을 내어준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사람의 어머니는 가장 깊고 가장 오래 사랑하는 존재가 아닐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예전에는 전화 요금이 비쌌다. 오래 통화하려고 하면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야, 야. 끊어라. 됐다.”

그 말씀 속에는 돈을 아끼려는 마음보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사랑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당신은 내 목소리만 들어도 행복하셨던 분이었다.

만일 지금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가장 먼저 할까.

아마도 평생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 한마디부터 꺼낼 것이다.

“엄마, 사랑해요. 정말 고마웠어요.”

그리고 그 한마디를 하고도 못다 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흙 속 감자 한 포기가 오늘 내게 가장 큰 인생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래서 오늘의 감자 수확은 풍성한 먹거리를 얻은 날이 아니라,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캐낸 날이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씨 : 맑음 /22도 / 교회 다녀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