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내가 찐빵을 깜빡하고 못 주고 헤어졌는데 아들이 자기 동생(우리딸)한테 이렇게 말 하더란다. “우리 엄마는 밤 새도록 바다를 가로지르며 수영해서라도 찐빵을 가져다 줄꺼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사랑은 나의 수고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독교 찬송가에도 이런 가사가 있다.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이번 가족 모임에서 일 년 만에 손자와 손녀를 만나면서 내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아마 나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와 조부모들이 자녀와 손주를 위해서는 자신의 수고와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어제 나는 **‘찐빵이 뭐라고’**라는 글을 썼다. 손자가 그렇게 좋아하는 찐빵을 준비해 놓고도 미처 들려 보내지 못했다.

결국 밤늦도록 다시 찐빵 공장을 가동하면서 처음 주려던 겟수보다 훨씬 더 많이 만들었다. 하나하나 빚어 쪄내고, 식혀서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찐빵과 불고기가 들어 있는 쿨러를 들고 서둘러 페리를 탔다. 한 시간 35분을 달려 트왓슨 페리 터미널에 도착하니 밴쿠버에서 온 딸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음 페리를 타고 다시 돌아와야 했고, 딸아이는 곧 시애틀로 가야 했기에 만남은 아주 짧았다. 급히 준비해 온 쿨러를 딸아이 손에 들려주고는 그렇게 헤어졌다.

몇 시간 후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찐빵을 못 가져가서 조금 실망했을 손자가 찐빵을 보는순간,

“찐빵이다!”라며 크게 외치며 좋아했단다.

곧이어 딸아이가 보내온 영상 속에서 손자는 찐빵을 한입 베어 물고는 말했다.

“이거 너무너무 맛있다. 나 이제 죽는다.”

그러더니 소파에 스르르 몸을 눕힌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아마 “너무 맛있어서 죽겠어!” 라는 말일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며칠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음식도 만들고, 함께 WildPlay에도 다녀오느라 몸이 꽤 지쳤다. 그런 가운데 어제 저녁에는 늦은 시간까지 찐빵을 더 만들었기 때문에 나의 에너지는 바닥이 났을만 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모든 피곤함이 손자가 찐빵을 맛있게 먹는 그 영상 하나를 보는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아들이 말한대로 내가 수영해서는 못갔지만 패리 타고 찐빵을 전달한 하루였다.

날씨 : 20도 / 맑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