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경에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온 사슴 케일이 밤 10시가 되었는데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예 마당 한쪽에 편안하게 누워 잠을 자고 있다.

헐~!

낮에 제시카가 그림을 그리러 왔다가 창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사슴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응, 매일 놀러 오는 우리 친구 케일이야.” 그랬더니 제시카는 동물이 조금 무섭단다.

하지만 사슴은 사람을 해치는 동물이 아니고 아주 순하다. 케일도 우리를 빤히 바라볼 뿐, 우리가 곁에 있어도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유유히 돌아다닌다. 마치 “나는 그냥 여기서 편하게 지낼게요.” 하는 표정이다.

마침 평소 계란을 사 오는 닭 농장에 가져다주려고 모아둔 야채 한 박스가 있었다. 하숙샘이 그걸 케일 앞에 내놓았더니 하루 종일 박스안에서 야채를 한 입씩 물고 천천히 먹는다. 그러다가 배가 부르면 그늘에 누워 한숨 푹 자기도 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태평하고 귀여운지 웃음이 난다.

그런데 하숙샘은 케일을 보는 마음이 나와 조금 다르다. 그저 귀여운 사슴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녀석의 사정이 무엇일까 걱정한다.

“가족이 없는가 봐요. 먹을 것이 없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건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이 산을 너무 많이 깎아버렸으니, 갈 곳이 없어진 짐승들이 이렇게 사람 사는 곳까지 내려오는 거예요. 우리가 먹을 것이라도 좀 줘야지요.” 그러면서 하숙샘은 연신 문밖으로 나가 케일을 살핀다.

밤이 깊어지자 나는 케일이 집으로 돌아갔겠거니 생각했다. 혹시나 싶어 하숙샘이 전등을 들고 밭으로 나가 보았다.

세상에나! 케일은 아직도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마치 “여기가 이렇게 편안한데 내가 왜 집에 가요?” 하는 듯이.

결국 농장 주인 하숙샘도 밤이 되었으니 이제 쉬어야겠다며 전등을 내려놓고 잠자리로 들어간 모양이다. 노인인 우리는, 젊었을 때 못지않게 바쁘다. 이렇게 자꾸 일거리가 생긴다.

이것도 혹시 한가한 내 손을 그냥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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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17도 / 맑음 / 수영장 다녀오다. / 오후에는 제시카와 그림 그리고 얘기하며 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