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는 열두 살 때 나의 정체성에 혼돈이 왔어요. 나는 남자로 태어났는데 여자예요.”
그 말을 들은 사람은 한국인으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얼굴과 골격은 누가 보아도 남성이었지만, 자신을 여성이라고 말했다. 나는 크게 놀라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는 다행히 어머니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뜻밖에도 담담하게 말했다.
“너는 한국에서는 살기 어려울 거야. 미국에 가서 공부하도록 하렴.”
어머니가 아들의 이야기를 그토록 크게 놀라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 역시 성소수자였기에, 어머니는 아들이 겪고 있는 혼란과 고민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한때 그 사람의 파트너였던 백인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을 한 적이 있다. 팔순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는 매우 인격적이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기력이 점점 쇠해지자 자신보다 훨씬 젊은 파트너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을 것을 걱정하며, 미리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질 사람의 외로움까지 생각하는 사랑이었다.
그 두 사람은 세상을 어지럽히거나 남에게 손가락질받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아끼며, 오랜 세월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그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사랑하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늘은 우연히 유튜브에서 성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한 한국인 가정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의사 부부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화장대에서 립스틱을 몰래 발라보기도 하고, 여자 잠옷을 입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부모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부모는 아들이 자신들이 바라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린 것처럼 절망했고, 아들을 붙잡으려 했다. 그때 아들이 부모에게 절규하듯 말했다.
“33년 동안 나는 엄마 아빠의 아들로 살아왔어요. 이제는 나의 길을 가게 해 주세요.” 부모와 아들(아니 딸)은 모두 다른 아픔으로 울고 있었다. 부모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는 아들의 마음도 이해할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피조물이다. 과연 누가 누구를 쉽게 정죄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주어진 삶의 모습과 마음의 깊이가 다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삶이라고 해서 그것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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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여름같이 따뜻하고 멋진 날이었다. / 21도 / 수영장 다녀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