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아이와 자주 전화한다. 거의 하루 걸러 한 번씩이다.
어제는 옛날 우리 이민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딸이 느닷없이 말했다.
“엄마, 자전거. 바지 두 개.”
나는 순간 찔끔하며
“쏘리, 쏘리!”를 연발했다.
딸에게 자전거 한 대 사주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치열한 이민 초기의 이야기다. 딸이 자전거를 사달라고 할 때마다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Next Year.”
그 말을 몇 년이나 우려먹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어찌어찌 아들에게 먼저 자전거를 사주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2년쯤 뒤, 그 자전거가 딸에게 대물림되었다고 한다. 내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문제는 그 자전거가 남자아이용 BMX 5였다는 것이다.
헌 자전거였지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전거였으니 딸은 친구들과 신나게 타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남자아이가 다가와 놀려댔단다.
“에롱 매롱 알라꼴라리! 남자 자전거 탄대요!”
그 말을 듣고 딸은 너무 창피하고 화가 나서 죽고 싶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바지 두 개로 이년간 버틴 사건’이다.
딸은 바지 두 벌을 번갈아 입으며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나는 매일 아침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일하러 나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매달 생활 전선에서 전력투구하다 보니 딸아이가 속으로 그런 서러움을 삼키고 있었는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미안함은 지금까지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런데 딸은 이 이야기를 두고두고 우려먹는다. 내가 미안해하는 모습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 기억 안 나지?”
“……미안하다.”
그러면 우리는 또 까르르 깔깔 웃는다.
나는 그때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내 사랑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그래도 참 고맙다.
그 부족함 속에서도 딸아이는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게 자랐다. 남자아이 자전거를 타면서도 친구들과 신나게 달렸고, 바지 두 벌을 번갈아 입으면서도 자기 몫의 어린 시절을 잘 살아냈다.
그렇게 자전거 한 대를 몇 년이나 기다리던 아이가 지금은 자전거 대신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승무원은 아니고, 미국과 캐나다를 대상으로 하는 회사에서 일한다. 직장 일로 1년에 평균 100번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참, 세월이란 신기하다.
자전거 한 대를 사주지 못해 “Next Year”를 외치던 엄마의 딸이, 이제는 1년에 100번 넘게 하늘을 날아다닌다니.
딸아이는 그 시절을 딛고 자기 힘으로 자기 인생의 자전거를 만들어 달려왔다.
“트리샤, 미안하다. 그리고…… 참 잘 커줘서 고맙다.” 어제도 전화를 끊으며 우리는 또 한바탕 웃었다.
이 이야기는 언제 꺼내도 우리 둘에게 웃음을 선물한다.

날씨 : 15도 / 아침에는 비가 왔지만 오후 부터는 해가 났다. / 수영장에서 벨트를 매고 아쿼핏을 했다. 일 년전에 허리에 통증이 심해서 깊은 물속에서 운동할때 나는 어제까지 누들을 타고 앉아서 했는데 오늘부터는 허리에 밸트를 매고해도 너무나 편했다. 앗싸~ 또 한 단계 올라갔네. 영차영차~ 매일 올라간다. / 저녁에 갑자기 교우 가족이 방문해서 급하게 함께 식사를 했다. / 바빴지만 감사한 하루를 또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