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흰 무와 **bell pepper(피망)**으로 피클을 담갔다. 담근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간이 알맞게 배어 아삭하고 맛있다. 무우가 약간 맵싸해서 더욱 더 입맛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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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이 오고, 이야기가 오고, 웃음이 오고, 때로는 한 끼의 음식이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머물다 가기도 한다.

지난주 월요일에 찾아와 이틀 묵어간 한 손님이 있었다. 내가 만들어 내놓은 음식 몇 가지를 맛보더니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집에 가서 한번 만들어 봐야겠어요.”

그 말과 함께 내가 알려준 레시피를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 갔다. 대개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맛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한번’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손님은 달랐다.

집에 돌아간 바로 다음 날, 코스코에 가서 필요한 재료를 무려 250여 달러어치나 사 왔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카톡을 보내왔다. 그리고 저녁 식탁에 내가 가르쳐준 생선 요리를 올렸더니 가족들이 모두 놀라워했다는 것이다.

다음 날에는 내가 가려쳐 준  dough까지 직접 만들고 두 가지 치즈를 섞어서 피자를 구웠단다. 이번에도 가족들이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전하는 손님의 말에는 어린아이 같은 기쁨이 가득했다. 다시 우리 집에 와서 다른 음식들도 더 배우고 싶다며 방방 뛰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덩달아 신이 났다.

그 사람에게는 음식에 대한 진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숙샘에게 들려주었더니 하숙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손님은 더 배울 필요도 없겠네요. 곧바로 하산시키면 되겠어요.”

下山 ~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웃음이 났다. 옛날 스승들은 제자가 충분히 배우고 익히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참 아름다운 말이다.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제자를 영원히 곁에 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스승의 손을 놓고 자기 길을 걸어가게 하는 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틀 동안 내가 너무 잘 가르친 것인지, 아니면 이 제자가 너무 잘 배운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전하고, 그 사람이 그것을 자기 삶 속에서 다시 피워내는 모습을 보는 기쁨은 생각보다 컸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진다.

하산시킬 수 있는 제자가 하나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자 하나를 하산시키고 나니, 이번에는 스승인 내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문득 이런 욕심이 생긴다.

‘나도 죽기 전에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음식 하나쯤 남겨 놓으면 어떨까?’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만큼 독특하고, 먹는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맛.

한국 음식의 깊이와 서양 음식의 아름다움을 한데 섞고, 영양도 좋고 색도 아름답고 먹기도 좋으며, 많이 먹어도 살 안찌는 그런 음식을 하나 만들어서 “이건 엘리샤표.” 하고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꿈을 줄여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오히려 이제껏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과 맛과 기억을 한데 모으면, 젊을 때는 만들 수 없었던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밤이 깊어 정신이 조금 몽롱해서 이런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오늘 나는 제자 하나를 하산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제자 하나를 세상으로 내려보내 놓고 보니, 이번에는 스승인 내가 새로운 산을 하나 찾아 나서고 싶어졌다.

허허허. 할매 꿈 한번 야무지다.

그래도 괜찮다.

꿈은 원래 조금 야무져야 하는 법이니까.

날씨 : 약간 흐리고 약간 비 그리고 약간 햇볕 / 15도 / 수영장 다녀오다. / 저녁에 또 예상없이 두 손님이 찾아와서 함께 식사하고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