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couver Island, Mile 0에서의 저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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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을 정리하다가 미국에 살 때 중앙일보에 기고했던 수필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미쳐라, 더 미쳐라〉**였다. 첫 대목은 이랬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미치기를 좋아한다.”

지금 읽어보니 웃음이 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을 맞으면 열병을 앓듯 며칠씩 앓아눕기도 했다는 내용이다. 그 글을 쓸 때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젊었으니,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 나는 ‘미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했다. 쇼핑에 미치고, 공부에 미치고, 재테크에 미치고, 사랑에 미치고, 꿈을 위해 독하게 미치기도 한다. 제목만 놓고 보아도 그때 내가 얼마나 다양한 ‘미침’을 생각했는지 알 것 같다.

요즘에는 ADHD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뜻한다. ADHD가 있는 사람 가운데는 특정한 일에 강하게 몰입하는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뛰어난 예술가나 과학자들 중에 ADHD 가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일부 사람들의 남다른 집중력이나 사고방식이 창의성과 연결될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어쩌면 남들이 단점이라고 여기는 어떤 특성도, 적절한 환경을 만나면 창의적인 힘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애플의 신화를 만든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바탕으로 열정과 끈기, 그리고 끊임없는 연습을 이야기한다. 음악의 역사만 보아도 바흐, 슈만,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같은 사람들은 평범한 틀 안에만 머물렀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예술가들에게는 때로 괴팍함도, 집요함도, 남다른 고집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강한 몰입과 집념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과학과 문화, 문학과 음악의 풍요로움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릴 때 아이들과 함께 미국을 횡단한 적이 있다. 사우스다코타를 지나면서 사진으로만 보던 러시모어산의 거대한 얼굴 조각을 직접 보았다. 조각가 *거츤 보글럼(Gutzon Borglum)* 설계하고 작업을 주도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링컨 보글럼(Lincoln Borglum)*이 작업을 이어받아 완성했다. 1927년에 시작된 이 거대한 작업은 1941년에 14년 걸려 마침내 끝났다. 이 사람의 집념과 아들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그 거대한 작품을 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온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남들이 적당히 하라고 말해도,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들.

나도 가끔 다시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고 싶어진다. 내 안에 묻혀 있는 기억의 샘물을 길어 올리고 싶다. 퍼내도 다시 고이는 샘물처럼, 오래된 기억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건져 올리고 싶다.

전쟁 속에서도 평화를 갈망했던 마음, 사람의 얼굴에 깃든 삶의 흔적, 그리고 한 폭의 그림 안에 시와 수필과 소설까지 함께 담아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딸아이는 가끔 나를 걱정한다. 엄마에게 혹시 반 고흐 같은 광기가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정말 귀라도 자르는 것은 아닌지 염려한다. 하필이면 딸이 붙여준 별명도 **‘Crazy Mommy’**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딸은 이 Crazy Mommy를 꽤 좋아한다.

아마 내일도 나는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긴 채,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날씨 : 흐리다가 해나고 / 15도 / 휴일이라서 집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