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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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자기스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재미있는 대목 한 줄기를 뽑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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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하루, 토요일 오후, 나는 바다에 면한 바위에 기대어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자갈을 밟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들고, 해변을 구르듯이 달려와 기함처럼 닻을 내리는 늙은 세이렌을 보았다.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숨까지 할딱거렸다. 뭔가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편지가 왔다면서요!” 오르탕스 부인이 안달을 내면서 물었다.

“아, 왔지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부인을 맞았다.

“부인에게 안부를 전하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부인 생각만 한답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겠다는군요. 떨어져서는 견딜 수 없다는 겁니다.”

“그게 다예요?” 이 불쌍한 여자는 숨을 고르면서 물었다.

나는 여자가 불쌍했다. 주머니에서 조르바의 편지를 꺼내어 읽는 척했다. 늙은 세이렌은 이 빠진 입을 헤벌리고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숨도 못 쉬고 귀를 기울였다. 나는 읽는 척했으나 둘러대기가 쉽지 않아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운 척했다.

“…..두목, 어제는 뭘 좀 먹으려고 싸구려 식당에 갔지요.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굉장한 미인 하나가 들어오지 뭡니까. 여신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맙소사! 여자는 꼭 우리 부불리나 같은 겁니다! 순간 내 눈에서는 분수처럼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지 뭡니까. 목이 꽉 막힙디다. 삼킬 수가 없었어요! 나는 일어서서 음식값을 치르고 나와 버렸어요. 오랫동안 성자를 찾는 일이 없던 내가 어찌나 속이 아픈지 성 메나스 성당으로 달려가 초 한 자루를 켜고는 기도했지요. ‘성 매나스시여! 원컨대 내 사랑하는 천사의 좋은 소식을 듣게 하소서. 우리 날개가 하루속히 다시 붙게 하소서!’ 이렇게 말입니다.”

“하하하! 오스탕스 부인이 웃었다. 부인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히 빛났다.

“뭘 가지고 그렇게 웃으시오. 우리 아주머니는?” 나는 숨을 돌리고 거짓말을 생각해 낼 시간을 벌 요량으로 딴소리를 했다.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부인은 키득거리다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뭘 말입니까?”

“날개 말이예요. 그 엉큼쟁이 같은 양반은 다리를 날개라고 부른답니다. 우리 둘만 있을 때는 늘 그래요. 우리 날개가 하루속히 다시 붙게 하소서라니…. 하하하!”

“그다음 말을 들으셔야지. 진짜 기절초풍할 겁니다….”

나는 편지 장을 넘기며 다시 읽는 척했다.

“봐요. 시까지 썼습니다. 이틀 전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우리 부불리나를 위해 시를 한 수 썼습니다. 원컨대 이 시를 나의 부불리나에게 읽어 주시어 내 괴로움을 나누게 하소서”

<오! 어느 오솔길이라도 좋으니 그대와 내가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좁은 오솔길이어도 우리 사랑을 감싸 주고도 남으리.

나를 빵 부스러기나 고깃점으로 갈아 놓아도.

내 바스러진 뼈는 힘이 있어서 그대에게 달려갈 수 있으리…>

“다른 말은 없나요?” 여자는 탐욕스럽게 제 입술을 핥으며 나무라듯이 물었다.

“오스탕스 부인, 더 이상 바랄 게 있습니까? 그래도 모르겠어요? 편지엔 온통 부인 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봐요. 넉 장이나 되지. 이 가장자리에는 심장도 그려져 있지요. 조르바는 자기 손으로 직접 그렸다는 군요. 사랑이 심정을 꿰뚫어버렸지. 그리고 밑에는 비둘기 두 마리가 끌어안고 있고… 부등켜안은 두 마리 비둘기는 오르탕스와 조르바라고 말입니다.”

“그것뿐이에요? 그것밖에 없어요?” 오스탕스 부인은 여전히 성이 차지 않는지 다그쳐 물었다.

“왜 없겠어요. 오르탕스 부인 조르바는 편지에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너무 중요해서 끝으로 미루어 둔 겁니다.”

“뭔가요?” 부인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뭐라고 했는고 하니 돌아오는 즉시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청혼하겠대요.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는 거예요.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대요.”

여자의 눈에서 진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거야말로 최상의 기쁨, 열망해 마지않던 항구였다. 여자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좋아요.” 여자는 귀부인이 되어 선심이라도 쓰는 듯이 말했다.

“받아 주기로 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일러 줘요. 여기 이 마을에는 오렌지 화환이 없다고 말이예요.. 하얀 초 두 가락과 핑크색 리본, 달콤한 아몬드도 사 오라고 해요. 그리고 웨딩드레스도 사와야 한다고 전해주세요. 흰 놈으로… 실크 스타킹과 공단 뾰족구두 한 켤레도…”

부인은 이미 남편을 심부름꾼으로 부리는 아내가 되어 주문을 끝내고 있었다. 부인은 벌떡 일어섰다. 갑자기 당당하게 결혼한, 유부녀가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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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자키스 영어: Nikos Kazantzakis, 1883년2월 18일 ~ 1957년10월 26일)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동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지형적 특성과 터키 지배하의 기독교인 박해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스 민족주의 성향의 글을 썼으며, 나중에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한계에 도전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소설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시적인 문체의 난해한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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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12도 / 가랑비와 햇볕 / 산책 한 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