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숙선생님 두 달 열흘동안 반찬을 위해 불고기를 넉넉히 재워 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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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튜브에서 코미디언 김재동 씨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너무나 웃기는 사람인데, 나는 과거에는 잘 몰랐다가 최근에 쇼츠로 몇 개 보게 된 것이다.
그가 농담처럼 한마디 던졌다.
“여러분,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니요, 아프니까 중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흥, 놀고 있네. 청춘, 중년 다 비켜라. 아프니까 그다음은 당연히 노년이다. 너희들이 뭘 알아? 늙어봤어? 여기저기 다 쑤시고 저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기막힌 고통을 알긴 하냐?” 하고 시비를 걸어본다.
맞다. 젊을 때는 연애하느라 가슴앓이를 하고, 이별에 아파 눈물짓는다. 하지만 그 아픔은 결국 또다시 사랑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달콤쌉싸름한 아픔이 아닐까. 얼마나 멋진 시절인가.
중년의 아픔이란 것도, 잘 익어가는 복숭아처럼 인생이 무르익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일 터다. 그것조차도 지나고 나면 “아, 그때 그랬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상처일 것이다.
그러나 노년의 아픔은 다르다.
밤마다 쑤셔서 잠을 못 이루고, 아침마다 굳은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하루를 시작한다. 계단 몇 개만 올라도 무릎이 욱신거리고, 약을 거르지 않으려고 손바닥에 알록달록 알약을 늘어놓는다. 병원 가는 것이 일상이 되고, 통증 주사 없이는 하루를 버티지 못하는 노인들도 있다. 어떤 이는 치매 남편을 돌보느라 자기 허리가 부서져도 쉬지 못하고, 어떤 이는 자식에게 부담이 될까 봐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못한다. 이렇게 고통은 끝없이 노인들의 보따리에만 쌓인다.
그러니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늙어보고 나서 하는 말, 그 말이야말로 진짜 보석이다.
아픔은 결국 노인들의 몫이다.
젊은이들이여, 제발 추상적인 아픔만 입에 담지 말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는 죽지도 못하고, 살아서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매 시간 주삿바늘에 의지하며 하루를 버티는 노인들이 있다는 것을, 그 현실을 꼭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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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맑음 / 19도 / 수영장 다녀오다. / 내일 아침에 밴쿠버 나가서 공항 근처 호텔에서 잠잔다. 딸이 와서 함께 동행해 주기로 했다. / 다음날 (금)에 Air Canada로 출국한다. / 가방은 아주 작은 것으로 하고 약과 간단한 옷 한 벌 그리고 컴퓨터다. / 집안을 힘 닿는대로 치우고 닦으며 하루를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