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는 어제 나를 방문했던 염유진 사진작가와 함께 전주에서 유명한 ‘전주 현대옥’에서 콩나물 국밥을 먹다. 이 식당은 로버트가 반찬과 물병을 날라다 주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수영장에 갔다.
결제를 마치고 신발을 락커에 넣은 뒤 보따리를 풀었는데,
아뿔싸—수영복을 안 가져왔다.
언니 집 도우미가 나를 내려주고 이미 떠난 뒤라 난감했다.
수영복을 파는 곳이 있긴 했지만 카드도 없었다.
혹시 누가 두고 간 수영복이라도 있을까 찾아봤지만, 그런 행운은 없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질 않는다.
결국 교회 목사님께 연락이 닿았고,
잠시 후 언니로부터 도우미가 내 수영복을 가지고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맨발로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 물었다.
“신발 안 신고 왔어요?”
“신고 왔지요. 락커에 있어요.”
그런데 그녀는 다시 말했다.
“그래도 신으셔야지요.”
내가 보기엔 그냥 맨발로 잠시 앉아 있었을 뿐인데,
그녀 눈엔 신발도 안 신고 앉아 있는 치매 증세 노인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조금 뒤엔 또 다른 여자가 다가와
“어머나, 왜 신발을 안 신고 계세요?” 한다.
속으로 ‘도대체 왜들 이러나, 남이 신발을 신든 말든 무슨 상관이지?’ 싶었다.
그때 마침 도우미가 수영복을 가져와서 락커로 갔다.
그런데 이번엔 락커키가 사라지고,
내가 쓰던 자리에 다른 사람의 짐이 들어 있었다.
직원을 불러 확인하니,
내 짐은 멀찍이 떨어진 다른 테이블 위에 외롭게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해프닝 끝에 드디어 샤워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샤워실은 사람들로 가득해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내 뒤에 있던 여자가 나를 앞으로 떠밀며 말했다.
“노인분이 추우실 텐데 좀 들여보내드려요.”
젊은 여자들에게 부탁까지 했다.
사실 나는 춥지도 않았고,
굳이 ‘노인 대접’을 받으며 새치기하듯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더우기 나는 평소, 다른 사람 새치기하면 반드시 따지고 혼을 내곤 하는 사람이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마친 뒤 수영복을 벗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나체로 락커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또 한 여자가 다가와 말했다.
“몸을 다 씻고 나가야 해요.”
“방금 깨끗이 씻었는데요.”
그제야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아, 그래요?”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
정말이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왜들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걸까.
남이 신발을 벗든, 샤워를 꼼꼼히 하든 말든
그냥 두면 안 될까?
하지만 뭐, 덕분에 좋은 ‘한국식 오지랖 훈련’을 받은 셈이다.
이틀간의 시행착오를 끝내고
내일은 완전히 준비된 모습으로 수영장에 갈 것이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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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아침에는 맑았다가 오후에 비가오다 / 점심시간에 교회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행하는 ‘노인대학’ 행사가 끝난 후 점심을 감사히 먹었다. / 은혜스러운 수요예배 다녀오다. / 엘리샤는 여기서도 너무 바쁘다 바빠. / 교회 사람들이 키 작은 언니와 나를 비교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기에 내가 그들애게 말해주었다. “우린 어머니가 다르거든요.”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까르르 웃어제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