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 앞 전등불 아래에는 오래전 스탠리 파크에서 찍은 엄마의 사진이 붙어 있다.
밴쿠버에 계시던 시절, 손주들을 돌보러 몇 해 함께해 주셨을 때 찍은 사진이다. 연한 미소를 띤 엄마는 빨간 꽃무늬의 시원한 여름 원피스를 입고 있다.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었다.

나는 부엌에서 요리를 할 때마다 거의 매일 엄마의 부엌을 떠올린다. 연탄불 위의 그 고달픈 삶, 연탄이 꺼졌을 때, 당황한 얼굴로 그 작은 불씨 하나 살리기 위해 애쓰시던 모습이 선하다. 연탄보다 아주 작은 도구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은 없지만 그것을 새 연탄과 삭은 연탄 사이에 새 연탄을 놓고, 작은 희망 같은 불꽃 하나 피워내기 위해 엄마는 인내를 가지고 견디셨다. 많은 식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그 작고 어두운 부엌에서 엄마는 쉴 틈이 없으셨다.

우리, 자식들은 그때 엄마의 고생을 몰랐다. 아니, 결코 몰랐다. 겨울이면 손을 지킬 고무장갑조차 없이 차가운 물에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셨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당신 삶을 원망하지 않으셨다.

*교회 새벽기도 종소리에 맞춰 일어나시던 엄마.
*힘들 때면 찬송을 부르며 일하던 엄마.

지금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 시절 엄마의 삶이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와 속삭인다.

‘왜, 나는 그때
엄마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해드리지 못했을까…
왜 그 흔한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해드리지 못했을까…’

엄마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힘듦을 말하지 않으셨다. 그 모든 삶의 무게를 오직 하나님께만 아뢰며 당신의 시간을 조용히, 살아내셨다.

요즘 수영장에서 거울을 볼 때면 그 속에 엄마 얼굴이 겹쳐 보인다. 세월 따라 내 얼굴은 점점 엄마를 닮아간다. 나는 쉽게 화도 내고 남을 탓하기도 하지만, 엄마는 그 어떤 일도 남 탓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너그러이 품으셨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엄마의 얼굴만 닮을 것이 아니라 엄마의 내면까지 닮아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평생 내 삶의 롤 모델이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로 평가 받고 있을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씨 : 맑음 / 18도 – 내일은 23도니까 많이 더울 것 같다. / 수영장 다녀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