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날씨가 참 아름답웠다. 이층 내 방에서 내려다본 동네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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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이를 하나, 많아야 둘만 낳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아이가 생기는 대로 낳던 시대였다. 나 역시 그 시대를 살았고, 우리 집은 7남매였다. 그중에서도 중간에 두 명은 어려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가족이 많다고 해서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대가족 속에서 나는 늘 외로웠다. 아무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묻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조용히 내 삶을 꾸려온 것 같다. 누가 들으면 “흥, 지가 뭐 철학자라도 됐나? 꼬맹이가.” 하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내 거처는 다락방이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그 다락에서 혼자 훌쩍거리며 울곤 했다. 울면서 나는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때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의 죽음도 그리 억울하지 않다.’ 초등학교 3~4학년쯤이었으니, 사춘기가 유난히 일찍 찾아온지도 모른다.
가족 안에도, 그리고 세상 어디에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어린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나는 어릴때 늘 ‘왜 어른들은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놓고도, 그것이 상처가 되는 줄 모를까?’ 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살아왔다.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어른이 되면, 힘이 있거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린 사람에게 절대로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지.’ 그러니까 나는 남보다 조금일찍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성장된것 같다.
윗자리에 있다는 것은 휘두를 권리가 아니라, 더 조심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을 나는 일찍 배운 셈이다.
지금의 나는 딸아이와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며 살아간다. 그 대화 속에서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다. 늘 고맙다. 딸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해준다. 우리는 서로의 찐 팬이고, 찐 친구다.
이 세상에서 피를 나눈 가족이나 부부의 연은 참으로 귀하다. 서로에게 위로자가 되어,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서로 잘 보듬어주며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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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pper Pickle을 3병 담그다.


날씨 : 맑음 / 11도 / 수영장 다녀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