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음식이 너무 흔하다. 냉장고 문을 열면 언제나 무엇인가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나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음식의 귀함을 몸으로 겪으며 자랐다.

학교에 가져가던 도시락은 늘 김치와 콩장, 아니면 멸치볶음이었다. 그것도 도시락을 싸 갈 수 있는 형편이면 다행이었다. 하얀 쌀밥이 담긴 도시락은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그래도 흰쌀밥을 싸 오는 친구들을 꽤 보았다.

나는 키가 커서 교실 맨 뒷줄에 앉았는데, 내 도시락에는 늘 보리쌀이 섞여 있었다. 아무도 자세히 보지 못했기에 오히려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괜히 마음이 작아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보리밥 덕에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고맙다.

오늘 낮에도 교우 부부가 다녀가며 함께 점심을 먹었다. 우리 집 냉장고는 늘 손님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냉장고 두 대에 김치냉장고, 따로 냉동고까지 있으니 그 시절과 비교하면 참으로 풍족하다. 그렇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이제는 누구나 이 정도는 누리고 사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음식의 풍요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 건너 건너집에 잔치가 있었다. 우리집은 이층이었는데 이층에서 그 집 옥상에 놓인 음식 바구니들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밤이 깊자 언니둘이 나를 불렀다.

“네가 제일 작으니까 살금살금 기어가서 전이나 떡을 좀 가져오렴.”

나는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니들은 내 어깨를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기와를 살살 밟으며 옆집 지붕을 건너고, 다시 잔치집 지붕까지 넘어갔다. 고요한 밤이었다. 기와 한 장이 삐걱해도 온 동네가 깨어날 것 같아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어린 마음의 강박이 나를 움직였다.

덮개를 살포시 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주섬주섬 담았다. 그리고 다시 기와를 밟으며 무사히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 둘이 눈을 반짝이며 내가 가져온 통을 들여다보더니

“엇, 이게 뭐야?”라며 매우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통과 나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전도 떡도 아닌, 잔치 하고 먹다 남은 사과 깎지들만 가득 들어 있었다.

도둑질까지 감행했는데 건진 것은 사과 깍지들 뿐이라니. 그 황당함과 허탈함이 칠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웃픈 기억으로 떠오른다.

그때는 떡이나 전은 특별한 날에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사과 깍지의 비밀을 생각하다보니 그것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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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맑고 비오고 / 9도 / 손님 맞이때문에 수영은 못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