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20일 금요일에 교회 젊은 일꾼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몇 달 동안 담임목사님이 안 계신 동안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안다.
그래서 내가 한턱 팍~ 쏘기로 했다. 으흐흐흐.
이렇게 웃음을 흘리는 나는 약간 이상한 할매일까?
이 나이에 뭐가 그리 신이 난다고 매일 부엌에서 띵가띵가 춤을 추듯 음식을 준비하는지 나도 가끔은 나 자신이 우습다.
그런데 오늘 저녁, 석영중 교수의 강연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새롭게 듣게 되었다. 얼마나 부드럽고 예민하게 작품 전체를 풀어주는지 마음이 깊이 움직였다. 강연을 들으며 나는 단순히 소설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받는 느낌이었다.
레프 톨스토이는 인간이 “시간과 더불어 사는 존재”라고 말한다.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삶, 변화를 수용하는 삶.
그리고 무엇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매 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삶.
우리가 성장하는 한, 우리의 삶은 더 이상 무의미하지 않다.
톨스토이가 던진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해답은 결국 ‘성장’이었다.
자아의 성장, 몰입의 성장, 세상과의 교감 속에서의 성장.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죽음을 의식하며 오늘을 사는 것.
왜 성장해야 하는가?
성장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그 기쁨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다.
지복(至福), 더할 나위 없는 충만이다.
일시적인 행복이 아니라 지속되는 기쁨이다.
성장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는 힘이 있다.
성장이 멈추는 순간, 삶도, 행복도 함께 멈춘다.
그래서 나는 부엌에서 띵가띵가하는 것이다.
젊은 일꾼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그 시간도 성장의 한 부분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나는 자라고 있다.
이 나이에 신이 나는 이유는,
아직도 내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상한 할매가 아니다.
성장하는 할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