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해녀들의 이야기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몇 달 전, 붓을 내려놓은 채 남겨 두었던 코스모스 그림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 한켠에 작은 빚처럼 남아 있었다.
“저 부분을 조금 더 손봐야 하는데…”
그 생각만 반복하다가 오늘 저녁, 마침내 그 캔버스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캔버스를 이젤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서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다음 단계를 어떻게 펼쳐야 할지, 색을 더할 것인지 덜어낼 것인지, 구도는 이대로 좋은지. 그렇게 끙끙대며 고심하다 보면, 어느새 손은 붓을 들고 물감을 묻히고 있다. 손끝은 망설임 없이, 붓을들고 스스로 길을 찾는 듯 춤추듯 화면 위를 나풀거린다. 마치 굿사위처럼 말이다.

유화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는 때론 몇 달이 걸린다.
물감이 마르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긴 시간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에 때문이다. 단순히 모사하는 그림이라면 고민이 이토록 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의 색채와 배열, 그리고 이 작품이 나에게 들려주려는 마음의 결을 읽어내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림은 서두른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스스로 말을 걸어올 때까지 귀 기울여야 한다.

다행히 오늘은 그 고비가 비교적 빨리 지나갔다. 터치업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화면은 한층 깊어졌다. 붓을 씻어 정리하고 물감통을 닫는 순간, 하루가 묵직하게 차오른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조용히 뿌듯했다.

사실 오늘은 이 장면을 만화로 옮겨보려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능숙하다 해도, 나를 자꾸 지나치게 젊게 그려내거나, 분위기가 가볍게 흘러가 버렸다. 오늘의 이 진지함과 사색을 담아내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 그래서 다른 버전으로 돌려보며 마음을 접었다. 기술은 정교하지만, 오늘의 결은 내가 직접 붙들어야 했다.

낮잠을 자러 침실로 올라가지 않고, 조금 더 작업을 이어간 것도 잘한 선택이었다. 그림을 마무리하고, 하루를 정리하며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으니, 오늘은 충분히 충만하게 보낸 날이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려 한다.
하루를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우리교회 모든 교우들, 특별히 우리 ‘한마음 목장’ 가족들의 평안과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 그림이 나를 불러 스스로 그려준 하루에 감사드리며 드디어 휴식으로 들어간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씨 : 맑음 / 10도 / 수영장 다녀오고, 그림 그리와 책읽기 하다.